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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산속에 있어 산을 모른다!
기사입력: 2022/02/1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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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산(廬山)은 광산이라고도 불리며 중국에 있는 명산 중의 한 곳이다. 여산은 중국의 삼산오악 중 삼산에 속한다. 삼산은 안휘의 황산과 온주의 안탕산, 구강의 여산을 말한다. 여산은 주나라 때에 광(匡)씨 성을 가진 일곱 형제가 이곳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는데 그들이 거처한 오두막집(廬)이 변하여 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여산은 지금의 장시성 지우장시 북쪽에 있다. 북쪽은 양쯔강, 동쪽과 남쪽은 보양호에 닿아 있으며 서쪽만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주봉은 피라미드 모양을 한 1474m인 한양봉이다. 향로봉은 여산의 북쪽의 봉우리 이름이다. 운무가 자욱한 모습이 향을 피운 후 연기가 올라가는 것과 같다하여 이같은 이름을 붙혔다고 한다. 여산은  예로부터 수많은 문인들이 다녀간 곳으로 중국 문학의 산실이다. 중국 역사상 여산을 다녀간 문인들이 남긴 문학 작품은 4000여수가 넘는다고 한다.

 

 

 

이백의 '망여산폭포'와 도연명의 '귀거래사', 백거이의 '비파행', 소동파의 '제서림벽' 등이 유명하다. 만약 여산을 찾아간 여행객이 있다면 여산을 보기 전에 여산을 노래한 시인의 시를 읽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당나라 시선 이백의 시 칠언절구로 된 '망여산폭포 제2수'를 먼저 감상해 보자. "향로봉에 햇빛 비쳐 자색 안개 생기고, 멀리 보니 폭포는 긴 강줄기를 매달았네. 물줄기 날아 내려 길이 삼천자이니,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것 같네(日照香爐生紫煙 遙看瀑布掛前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이백은 떨어지는 폭포의 장관을 보고 강줄기를 매달아 놓은 것 같다고 표현을 하고 하늘의 은하수가 솓아지는 것 같다는 비유를 했다. 물속에 있는 달을 보고 안아 볼려고 뛰어 들었다는 천재 시선 이백이 여산의 폭포를 보고 감격해 지은 이 시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시상의 경지를 볼 수 있다. 이백은 일찌기 벼슬을 버리고 산수를 찾아다니며 술과 달을 벗삼아 방랑을 했다. 후세 문인들을 이백의 망여산폭포에 대해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가 없다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이백은 월하독작에서 달과 그림자를 술친구로 불러 들이고 촉도난에서 자연과 신화를 아우르는 시선이라는 극찬을 들었다. 이같은 천재 시인이며 시의 신선인 이백을 필적할 후세  시인 중에 여산에 관한 시를 쓴 시인은 송나라 소동파다. 다음은 소동파가 지은 여산에 관한 시 한 수를 감상해 보자. "가로로 보면 산줄기요. 세로로 보면 봉우리라.멀고 가까움, 높고 낮음에 따라 모습이 각각 이구나. 여산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함은 단지 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네(橫看成領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소식이라고도  하는 소동파(蘇東坡)가 중국의 강서성 여산에 있는 서림사의 벽에 썼다는 '제서림벽(題西林壁)' 이라는 시다. 산속에 들어가 있으면 산의 참된 모습을 볼수 없다는 뜻이다.

 

 

 

어떤 공동체의 안에 있으면 그 공동체의 모습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자신의 모습을 바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벗어나야 한다. 자기의 주관에 갖혀 있으면 자기에 대한 바른 관찰은 할 수가 없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는 시다. 소동파는 호앞에 성을 붙인 것이고 본래 이름은 소식(蘇軾)이다. 아버지와 아들 3인이 당송 8대가에 속하는 역대 최고 문인이다. 소동파의 적벽부와 후제벽부는 중국 뿐만 아나라 우리나라에도 소동파 문학이 추앙을 받았다. 두 시를 읽고 두 시인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백의 시에는 자유 분방하게 감상적인 정서를 들어낸 낭만주의가 풍기고 있다. 소동파의 시는 서정적이면서도 철학적 요소가 담겨있다. 

 

 

 

이백의 시는 한폭의 절경을 눈앞에서 보는듯 하지만 소동파는 자연을 묘사하면서 깊은 천리를 내포하고 있다. 여산의 폭포을 바라보고 노래했던 이백도 가고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고 한 소동파도 없다. 하늘로 올라 갔는지 산이 됐는지 물이 되어 흐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진흙위에 새 한 마리가 발자욱 하나 남기고 날아가듯 살다가 가는 인생이다. 그러나 이백과 소동파는 허무를 노래하고 슬픔을 즐기기도 하며  살았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서러워도 찬란하게 살았다. 온 세상을 무대 삼고 광대처럼 온 몸으로 춤을 추듯 시를 짓고 읊으며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다.

 

- 이동한 헌정회(憲政會) 편집주간,

- 현, 전국안전신문 논설위원,

- ♦이동한 DM(dream making)리더십포럼이사장, 전 세계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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