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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밥이 먹고 싶었다
기사입력: 2022/10/08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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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쌀은 학명으로 자포니카(japonica)라고 하며 원립종과 단립종으로 나누며 밥을 지으면 끈기가 있다. 쌀에는 비타민 B와 B2가 있으며 풍부한 식이섬유를 지니고 있다. 한자로 '쌀미(米)'로 표기되는데 '기(氣)' 글자에 이 미(米)자가 들어 있다. 기는 무형 유형의 기운을 뜻한 것으로 만물의 가장 기본적인 것, 만물의 근본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  조상들은  쌀밥 한번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건강을 위해 쌀밥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시대를 살고있다.

 

 

우리나라의 주식인 쌀은 2003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오리에서 발굴된 볍씨 59톨이 발견 되어 1만 5천년 전의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쌀이라고 한다. 기록상으로는 중국의 '삼국지'와 '위지동지전' 우나라는 '삼국사기'와 '백제본기'에 벼농사를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쌀을 주식으로 삼은 것은 4~5세기 경부터 쌀로 밥을 해먹었다고 보고있다. 330년 무렵에 애국모 저수지, 김제의 벽골제, 제천의 의림지, 밀양의 수산제 등이 만들어지면서 벼제배의 면적이 증가했다. 1492년 성종 23년 금양잡록에 의하면 올벼, 주생벼, 늦벼, 논벼, 밭벼 등 27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930년에는 대풍작으로 1918만 1천석을 생산했으며 1870년에는 개량종인 통일벼를 심기 시작해 년평균 수확량이 크게 증가해 1984년도에 3,950만석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식량의 자급도를보면 쌀이1965년도 100,7%에서 1999년 96.6%로 감소했고 보리가 1970년 106.3%에서 1999년 66.6%로 줄었으며 밀은 1965년 27.0%에서 1999년 0.1%를 차지했다. 전체 양곡의 자급도는 1965년 93.9%, 1984년 48.7%,  1990년 43.1%, 1997년 29.4%로 낮아졌다. 

 

우리나라 식량 생산 자급도는 매년 낮아지면서 농민들의 자립기반이 약화되고 농촌인구는 감소되고 노령화됐다. 우르과이 협상으로 쌀이 개방되고, 밀이나 감자로 주식이 바뀌는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우리의 주식인 쌀이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 더욱 농업 강대국이 식량을 무기로 내세울지 모르는 우려를 하지않을 수 없다. 쌀은 벼열매의 껍질을 벗긴 알개이다. 벼는 벼과에 속하는 20여종의 품종이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종류는 오리자사티바이며 일본형, 인도형, 자바형 3형으로 분류한다. 

 

 

벼의 원산지는 중국 남부, 미얀마, 타이, 인도 동부 등 이다. 중국 남부 호남성 옥석암 동굴 유적에서 BC 9000년 전의 볍씨가 출토된 바가 있다. 쌀의 구조는 왕겨, 과피, 종피, 호분층, 배유 및 배아로 되어 있다. 종류로는 아밀로오스 함량에 따라 맵쌀과 찹쌀로 나누고, 도정 정도에 따라 현미 5분도미, 7분도미, 백미 등으로 나누며, 산지에 따라 경기미, 호남미, 인천쌀 등으로 나누고 가공별로는 강화미, 알파미 등으로 나눈다. 

 

쌀은 전분을 주 성분으로 하며 단백질은 7%, 지질과 회분은 적개 함유하고 비타민류를 함유하고 있다. 쌀밥과 빵의 영양을 비교하면 쌀의 단백가는 78에 비해서 빵은 44에 불과하다. 단백질은 쌀이 더 우수하다. 통일신라시대 부터 쌀이 주식의 기반을 굳혔고 고려시대에 쌀생산의 증대를 위해 경지면적 확대와 쌀창고를 증설했다. 쌀이 조세의 수단이 되고 화폐 대신 사용됐다. 조선시대에 오면서 벼 재배 면적이 증대되며 생산량이 높아지고 식탁위의 주식이 됐다. 

  

쌀을 이용한 가공식이 늘어났다. 대표적인 쌀떡에는 시루떡, 백설기, 절편, 계피떡, 송편, 흰떡 등이 있으며 가짓수는 100가지가 넘는다. 쌀이 발효과정을 거치면 탁주, 약주, 소주가 제조되며 수백 가지의 주류를 양조할 수 있다. 엿기름, 식혜와 엿을 만들 수 있다. 쌀을 쩌서 말린 비상식품도 있고 찐살로 약밥, 미숫가루, 다양한 죽을 만들 수 있다. 설날 아침에는 떡국을 만들어 먹고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 약밥을 먹으며 음력 4월에는 찹쌀 가루를 반죽하여 화전과 증편을 먹었다. 

 

음력  10월에는 시루떡을 쪄놓고 고사를 지내고 동짓날에는 팥죽을 만들어 사당에 올리고 대문에 뿌리고 나누어 먹었다. 별신굿에도 쌀을 담은 놋대야를 물고 나오고 쌀로 점을 쳤다. 쌀이 우리의 주식이 되면서 민족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정신적 육체적 힘의 원천이 됐다. 쌀을 생산하고 유통과 소비를 하는 생활이 국민경제의 초석이 됐다. 조상의 영을 모시는 신주단지에 봉납하는 곡식이 쌀이 되면서 풍년기원, 햇곡 감사, 자손번식과 만복을 비는 매체가 되었다. 

 

쌀은 화폐 대신 물품의 가치 비교를 위한 표준이 되었다. 우리 민족은 쌀밥은 커녕 보리밥도 먹지못해 굶으며 힘든 보릿고개를 넘어 왔다. 고속의 경제성장으로 쌀밥을 맘대로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제는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며 쌀밥을 적게 먹고 잡곡밥을 먹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세상이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 이동한 헌정회(憲政會) 편집주간,

- 현, 전국안전신문 논설위원,

- ♦이동한 DM(dream making)리더십포럼이사장, 전 세계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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