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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적》흰 구름과 같이 산다네
기사입력: 2023/03/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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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새가 숲 근처서 우는 소리 듣는데/새로 지은 초가 정자는 실개울을 내려 보네/홀로 술 마시며 그저 밝은 달 짝을 삼아/한 칸 집에서 흰 구름과 더블어 산다네(喜聞幽鳥傍林啼/新構芽편壓小溪/獨酌只遼明月伴/一間경共白雲樓) 이언적 선생이 지은 '계정(溪亭)' 이라는 한시다.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홀로 자연과 더블어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시다. 경주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옥산서원(玉산書院)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고 배향하는 서원이다. 

 

 

 

회재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정립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회재의 호는 주희의 호인 회암(晦庵)에서 회자를 따왔다. 회재의 성리학은 퇴계로 이어졌으며 회재는 1610년 김굉필과 정여창, 조광조, 이황 등과 함께 문묘에 종사됐다. 옥산서원은 1572년 임진왜란 때도 병화를 면하고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도 보존 되었던 전국 47개 서원 중에 하나다. 옥산서원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제다. 서원은 화개산을 주산으로 하여 수려한 풍광과 울창한 수목이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서원 앞의 계곡은 폭포가 되어 소리를 내며 흐르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서원을 감돌아 흐른다. 서원은 회재가 이름을 지은 주변의 계곡에 관어대와 탁영대, 세심대, 징심대, 영귀대 등 오대 중에 세심대에 위치하고 있다. 세심대에 흐르는 계곡물은 상중하 폭포로 용추를 이루며 서원 오른 쪽인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른다. 세심대는 용추에서 떨어지는 물로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한다는 뜻이다. 서원의 정문에는 역락문이 있고 서원의 누마루인 무변류가 있다. 

 

 

 

무변루 아래를 지나 돌 계단을 올라가면 강당인 구인당(求仁堂)이 있다. 구인당 좌우로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민구재와 암수재가 있다. 암수재에는 총 866종 4,111책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다. 그 중에 '삼국사기'와 '해동명적'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마당 가운데는 관솔불을 피워 서원을 밝히던 정료대가 서 있다. 구인당 뒤에는 체인문(體仁門)이 있고 그 뒤에 체인묘와 진사청이 있고 사당의 담 밖 왼쬭에는 경각, 오른쪽에는 신도비각이 있다. 수백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향나무가 서원의 오랜 역사를 증거하듯이 우뚝 서있다. 

 

 

 

독락당(獨樂堂)은 서원 계곡 건너편 위쪽에 있으며 회재의 독서 공간이자 사랑채다. 회재가 1531년 낙향하여 6년간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던 집이다. 독락당 뒤에 개울을 끼고 있는 계정(溪亭)은 계곡을 향해 쪽마루가 있는 작은 집이다. 독락당 정원에는 산수유 고목 나무에 노란 꽃이 피어 있다. 목단과 쑥 밭도 있다. 회재 선생이 독락당 청마루에 앉아 속세에서 찾아온 중생에게 깨달음을 주는 우주의 원리를 한 말씀 주실 것 같다. 옥산서원은 서쪽을 향해 있고 동서북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만 트여있어 계곡물이 흘러가고 있다. 서원 서쪽의 앞산은 무학산이고 북쪽에는 자옥산이다. 

 

 

 

회재가 낙향한 연유는 1531년 40세에 사간원 사간으로 있을 때 당시의 권신 김인로의 등용에 반대하다가 성균관 사예로 죄천됐으며 계속 김인로의 공격으로 쫓겨났다. 그 후에 낙향하여 이곳 지옥산 아래 독락당을 짓고 6년간 학문에 전념했다. 1537년 김인로가 실각한 후 조정으로 복귀했다. 1538년 홍문관 직재학에 임명됐다.1539년 세자교육을 담당하고 중종에게 바른 정치를 위한 '일강십목소' 상소를 올렸다. 인종 승하 후에 원상이되어 국정을 총괄했다.1547년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평북  강겨로 유배됐다. 1563년 63세에 적소에서 사망한다. 

 

 

 

유배지에 함께 갔던 서자인 이전인이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해 엄동설한에 석달 동안 시신을 지고 수천리 길을 걸어 고향으로 돌아 왔다. 이전인이 아버지의 학문을 계승해 정리하고 명예를 회복시켰다. 회재는 40대에 정치적 고난을 겪고 낙향해 6년간 성리학을 연구하고 자연속에서 도를 닦았다. 그리고 다시 정치판에 나아가 일인지하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가 다시 실각해 유배되었다. 그리고 고항에는 서자의 등에 엎혀 돌아왔다. 온갖 세상의 파란만장을 겪고 시신으로 귀향했다. 돌아온 곳이 혼자 즐겁게 산다는 독락당이다. 혼자 술마시고 달을 벗 삼고 흰 구름과 더블어 지내는 곳으로 돌아 왔다. 시채말로 혼술 혼밥 혼숙의 독처에 달과 구름을 벗 삼고 지내는 곳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살아서든 죽어서든 돌아갈 곳이 아니든가. 

 

- 이동한 헌정회(憲政會) 편집주간,

- 현, 전국안전신문 논설위원,

- ♦이동한 DM(dream making)리더십포럼이사장, 전 세계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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