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말은 "어리숙해 보이는게 어렵다"는 뜻이다. 원래 난득호도 흘휴시보(難得湖塗 吃虧是福) 즉 "어리숙해 보이기 어렵고 손해를 보는 것이 곧 복이다" 는 한자문에서 나왔다. 이 한자 성어는 중국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좋아했다. 한국 사람도 이 말을 좋아해 선비의 글방이나 관리의 집무실에 서예 글로 걸어 두었다. 이 말은 중국 청나라의 화가 겸 서예가로 유명한 판교 정섭(鄭燮1693~1765)으로 부터 유래됐다. 그가 유현지현에 있는 동안 장제인 정묵이 보낸 편지에 조상으로 물려받는 담장에 대한 소송이 붙었는데 홍화현 지현에게 부탁해 달라고 했다.
그에 대한 회신에 "천리나 편지 보낸 것이 담장 하나 때문인가. 그에게 몇 자를 양보하면 어떤가? 만리장성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어찌 진시황은 보이질 않는가" 라고 답을 보내며 '난득호도 흘휴시복' 이라는 글을 써보냈다고 한다. 그는 난득호도에 관한 주석을 이렇게 달았다. "총명하기는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지만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기는 더욱 어렵다. 집착을 버리고 한 걸음 물러서면 마음이 편하니 나중에 복받고자 한 것도 아니다
(聰明難 湖塗難 由聰明轉入糊塗更難 放一着 退一步 當下安心 非圖後來福報也)"
난득호도에 다른 해석도 있다. 첫째는 "세상에서 명리를 다투고 이기려해도 다 소용없는 일이니 그저 사람은 약간 멍청하게 사는 것이 좋고 욕심없이 일을 처리하면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고 마음은 고요하다"는 뜻으로 판교가 59세에 유현에 있을 때에 시끄러운 세상에 총명한 사람이 멍청하게 사는 것이 좋다는 뜻으로 난득호도라는 글을 썼다는 것이다. 둘째는 판교가 유현지현으로 발령을 받고 갔을 때에 백년만에 오는 가뭄을 만났다. 그러나 황제가 파견한 흠차대신은 난민구제는 하지 않고 화가인 판교에게 서화만 달라고 했다.
판교는 흠차대신 요요종을 풍자하는 그림을 주었다. 그는 대노해 판교를 괴롭히고 백성을 더 굶겨 죽도록 했다. 모든 사람과 처자식까지 판교에게 "멍청하게 가만히 있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에 판교는 "멍청한 척 하는 것도 난 모른다. 총명하기도 어렵지만 멍청하기도 어렵다. 총명한 사람이 멍청하게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그저 놓아버리고 한 걸음 물러서면 마음이 편안한 것을 나중에 복받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고 하면서 난득호도를 말 했다. 이는 총명한 사람이 자신의 양심을 버리고 멍청한 척, 모르는 척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셋째 인민일보에 '난득호도설에서 질량만리까지"라는 글을 쓴 주철지는 "판교는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던 사람이다. 그가 강직했기 때문에 참언에 대하여 어쩔 수가 없을 때 '난득호도'라고 탄식했던 것이다" 고 해설했다. 백성의 고통을 보면서 어쩔 수 없어서 그저 멍청한 척 모른 척할 수 밖에 없어서 고통을 안으로 삭여야 했기 때문에 난득호도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중국인 들은 '난득 호도' 를 처세를 위해 으뜸가는 덕목으로 생각한다.
거짓으로 어리석은 척하고 그러나 진짜 미친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가치부전(假痴不癲)이라는 말도 비슷한 뜻이다. '빛을 감추고 어둠속에서 힘을 기른다' 는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말도 유사한 뜻이 담겨 있다. 삼국지에 유비를 도와 천하를 도모했던 제갈공명이 주장한 천하삼분지계의 기본 원칙이다. 등소평이 주장한 외교의 대원칙으로 1980년 이후 30년간 중국 굴기의 회두가 됐다.
난득호도의 '호도'는 중국어로 '후투'라 하여 '바보'라는 뜻이다. 난득호도라는 말을 판교 정섭이 어떤 처지에서 어떤 뜻으로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은 온갖 욕심과 만행이 난무하는 난세에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때린다. 지금도 세상에는 힘들지만 바보처럼 지내고 속터져도 축기처럼 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난득호도의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 이동한 헌정회(憲政會) 편집주간,
- 현, 전국안전신문 논설위원,
- ♦이동한 DM(dream making)리더십포럼이사장, 전 세계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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