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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본의 무사도, 신라의 화랑도
동양적 군인정신의 뿌리
기사입력: 2024/06/2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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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

 

국제연맹 사무차장도 지낸 일본의 대표적인 국제통 인물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가 1899년에 영어로 써 미국에서 출판한 [BUSHIDO, The Soul of Japan]은 일본의 武士道를 세계에 알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책이다.

 

니토베가 이 책을 쓴 이유가 있었다. 책을 쓰기 약10년 전 그는 벨기에의 법학자 드 라브레의 집에 머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산책을 함께 하다가 법학자가 물었다고 한다.

 

"貴國의 학교에서는 종교교육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종교 교육을 안한다고요? 어떻게 도덕교육을 하죠?"

 

벨기에 법학자는, 서양사람들은 오랫동안 기독교를 통해서 도덕을 배워왔는데 이 동양의 후진국은 종교시간이 없다니 그렇다면 善惡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던 것이다.

 

니토베도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하니 자신은 학교에서 도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正邪善惡의 관념은 어디서 배운 것일까. 곰곰 더듬어가 보니 "나의 도덕을 형성한 것은 일본의 武士道이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니토베가 쓴 [武士道]에는 재미 있는 대목이 있다. 요지를 정리하면 이렇다.

<武士道 정신에는 불교, 유교, 神道의 영향이 들어 있다. 불교는 무사도에 어떤 성격을 심었나. 운명에 임하는 平靜한 감각, 피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조용한 복종, 위험에 직면했을 때의 금욕적인 침착, 생명을 가볍게 보고 죽음을 가까이하는 마음이다.

 

神道는 불교가 줄 수 없는 것을 武士道에 심었다. 조상에 대한 존경심, 부모에 대한 효성, 主君에 대한 충성심이다. 애국심과 忠義의 마음은 神道에서 나온 것이다.

 

공자와 맹자를 중심으로 한 유교적 敎義 또한 君臣, 父子, 夫婦, 長幼, 朋友간의 예절과 의리에 대해서 무사들을 교육했다. 공자는 정치인들의 도덕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이는 지배층인 무사계급에 들어맞았다. 맹자는 평민들을 위하는 이야기를 많이 남겼다. 이는 정의감이 강한 무사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무사도는 유교로부터 仁義를 배웠던 것이다.

 

신라 末의 대학자 崔致遠은 화랑도 정신을 儒佛仙의 합작품이라고 말했다. 유교, 불교, 仙道(이는 북방유목민족 고유의 샤머니즘적 종교로서 일본에서 말하는 神道와 비슷하다)의 정신이 화랑도에 녹아들었다는 뜻의 말을 한 것이다.

 

불교의 초연한 명상, 유교의 仁義, 仙道의 忠義가 합쳐진 것이 風流라고도 불린 玄妙之道로서의 花郞道였던 것이다. 戰線을 누비는 장교집단에게 '꽃 신랑'이란 의미의 花郞이란 이름을 붙여준 여유와 멋! 화랑도가 소위 渡來人을 따라서 일본에 건너갔고 이들이 일본 武士道의 발생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도 있다.

 

화랑도는 6세기 동아시아에 나타난 최초의 장교 양성 기관이었다. 7세기 그들은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12세기 일본에선 무사들이 집권하여 가마쿠라 막부를 만들었다. 같은 시기 한국에선 무신란이 일어나 무사들이 100년간 집권하였다. 일본과 한국의 역사가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는가 했더니 13세기 몽골군단의 고려침입으로 무신정권은 붕괴된다.

 

咸秉春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를 韓日 역사의 분기점이라고 보았다.

 

♦ 武士道와 匠人정신

 

참고로 일본의 武士道는 그 계통이 신라의 화랑도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많다. 신라에서 건너간 이들이 전한 것을 일본식으로 발전시켰다는 느낌이 든다.

 

일본의 武士道는 종교는 아니나 종교적 心性을 깔고 있다. 일본인이 물건을 만들거나 직장에 다닐 때 보여주는 집중력과 성실함, 여기서 나오는 완벽함의 추구엔 종교적 心性이 보인다. 종교적이라는 것은 궁극적인 것, 초인적인 것, 절대적인 것, 완벽한 것을 갈구하면서 거기에 도달하기 위하여 求道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이런 마음이 경제에 투입되면 名品을 만든다. 한국이 산업혁명을 가장 늦게 시작하였지만 세계 5대 공업국에 오른 것은 군사문화가 제조업에 들어와 놀라운 정밀성과 생산성을 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수년 전 히스토리 채널에서 일본의 사무라이(武士)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마사무네(正宗) 집안은 700년째 代를 이어 名劍을 만들고 있었다. 그 匠人은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칼을 만들고 나면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옵니다. 이 칼에 내 이름이 새겨지고 내 정성이 들어갑니다. 1000년 뒤에도 저는 이 칼을 통해서 살아 있을 것입니다.”

 

칼에 영혼을 불어넣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기능공이 철학자처럼 말했다. 일본인들은 상품을 만들 때도 영혼을 쏟아 붓듯이 정성을 다한다고 한다. 그러니 불량률이 세계에서 제일 낮은 제품이 나오는 것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무식한 싸움꾼이 아니라 글을 아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武士道를 ‘죽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뒤집어보면 ‘사는 것’이다. 항상 명예로운 죽음을 생각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의 모든 분야에 스며있다. 미국의 건국정신, 서양의 기독교 정신(또는 신사도나 기사도), 조선조의 선비정신, 신라의 화랑도 정신 같은 것들이 지도층 속에서 살아 있어야 그런 사회는 타락하지 않는다.

 

♦ 사무라이 정신

 

일본 北海道의 노보리베츠 온천마을 근방엔 에도 시대의 취락을 再現한 민속촌이 있다. 登別伊達時代村(노보리베츠 다데 지다이무라)이라고 한다. 그 안에 사무라이館이 있고 유키 료이치라는 사람이 썼다는 ‘武士道’(Spirit of Samurai)라는 글이 걸려 있다.

 

<인간의 투쟁본능은 보편적인 것이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다. 일본은 이 거친 투쟁본능에 제어장치를 붙여, 통제하려고 했다. 이를 武士道라고 한다. 이는 사회를 통제하고 또한 활력을 주었다. 그리고 투쟁본능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그 어떤 神聖한 것의 존재를 일본인에게 깨우쳤다. 봉건제도는 무너져도 그것을 지탱해준 武士道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를 體現한 이를 사무라이라고 한다.

 

武士道를 일본인의 독특한 관념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독특한 출생의 비밀에 있다. 무사도의 아버지는 禪이고 어머니는 유교이다. 禪은 불교에 있어서 명상이며, 深思默考에 의해 知의 영역을 넘어서서 절대의 영역을 지향하는 것이며, 유교는 祖先숭배신앙을 기초로 민족의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 규범이다.

 

따라서, 상호 모순된 개념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생긴 武士道를 體現한 인간, 즉 사무라이는 이 둘의 조합의 비율에 따라, 또 그 시대의 요청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나타난다. ‘사람의 人生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이며, 서두르지 말고 참는 것이 無事長久의 기본이다’라고 말한 도쿠가와는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이고, 강함을 추구하면서 결투에 생애를 걸고 상대를 죽여 간 미야모토 무사시도 사무라이이다.

 

이 두 사람 간에는 공통된 삶의 방식이 없어 對局에 위치하는 듯하다. 단 하나 있다고 한다면 艱難辛苦의 한가운데서 각각 神에 다가가 체감한 것, 이것이 사무라이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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