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悠悠自適)은 속세를 떠나 아무런 속박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삶을 사는 모습을 말한다. 아무런 구속을 받지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삶, 산수를 찾아 자연속에 머물면서 세상사를 잊어버리고 자신의 시간을 즐기며 사는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유사한 말로 유연자적(悠然自適), 유연자득(悠然自得), 안한자적(安閑自適), 우유자적(優遊自適), 고와동산(高臥東山), 매처학자(梅妻鶴子)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모두 속세를 떠나 편안과 자유를 누리면 사는 선비의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명나라 홍사성의 채근담에 보면 은자(隱者)의 유유자적(隱者悠悠自適)에 관한 경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은자의 맑은 흥취는 모두가 자적 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술은 권하지 않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바둑은 다투지 않는 것으로 이김을 삼고/ 피리는 구멍이 없는 것으로 적당함을 삼고/ 거문고는 줄이 없는 것으로 고상함을 삼고/ 만남은 기약하지 않는 것으로 참됨을 삼고/손님은 마중하지않는 것으로 편안함을 삼는도다/ 만약 일단 겉치례에 사로잡히고 형식에 얽매인다면 /문득 속세의 고해에 떨어지고 말리라(幽人淸事總在自適/故酒以不勸爲歡棋以不爭爲勝/ 笛以無腔爲適琴以無絃爲高/ 會以不期約爲眞率客以不迎送爲坦夷/ 若一牽文泥跡便落塵世苦海矣)"
욕심을 버리고 남과 다투지 않고 평안과 자유를 누리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이다. 세속의 허례에 빠지지 않고 내면의 욕망에 잡히지 않고 참된 자아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삶이다. 위나라와 진나라의 정권 교체기에 부패한 정치 권력으로 부터 등을 돌리고 죽림에서 거문고와 술을 돌리고 청담을 나누며 세월을 보낸 7인의 현자가 있었다. 완적과 혜강, 산도, 상수, 유령, 완함, 왕유이다. 이들을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불렀다.
이들은 모두 유가적 질서와 형식적인 예교를 비웃고 노장사상을 따르며 무정부주의적 태도를 취했다. 그들의 도피적 처세술이 현실 정치에 대한 압력으로 여겨졌다. 그중 혜강은 사마씨의 회유를 끝까지 거절하다가 사형당하기도 했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유유자적은 차원이 다르다. "네다리 소나무상 위에 죽한 그릇/ 하늘 빛과 구름이 그 안에 함께 떠도네/ 주인은 도가 아니라며 안색이 없고/ 나는 물속에 거꾸로된 청산이 좋다(四角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徘徊/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과객 김삿갓에게 대접한 건데기가 없는 멀건 죽이라 하늘과 청산이 비쳤다. 주인은 미안해서 면목이 없는데 김삿갓은 태연하게 나는 본래 청산을 좋아한다며 시를 읊었다. 미안해 하는 주인에게 시의 내용이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히려 문전 걸식의 처량한 처지에 처한 자신을 달래는 시가 됐을 지도 모른다. 김삿갓은 시 한 수와 술 한 잔으로 속세를 주유하며 유유자적의 경지를 누렸다. 부정과 불의가 넘치는 세상을 해학으로 비웃고 꾸짖기도 하며 유유자적의 삶을 살다 갔다.
자신이 도시에 있거나 산속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속세에 시달리지 않고 탐욕으로 속을 태우지 않고 근심 걱정을 초월해서 진정한 자유인, 자연인으로 유유자적 살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공자는 "사람이 70세가 되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법규에 어긋나지 않게 된다(從心所欲不踰矩)"라고 하였다.
사람이 수도를 해서 성인이 되고 수행의 결과 열반에 이르는 경지를 설파하신 것이다.
유유자적이라는 말을 붙혀 식당과 다방이 생기고 회사와 단체가 유행하고 있다. 유유자적이 어디 말로 되고 이름 붙힌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유유자적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 이동한 헌정회(憲政會) 편집주간, 언론학 박사,
- 현, 전국안전신문 논설위원,
- ♦이동한 DM(dream making)리더십포럼이사장